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일제에 식민지가 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를 시작으로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는 식민지 상태였지요.
사실 1905년 을사조약부터 실질적으로 대한 제국의 통치권은 일본에게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세계 정세는 약육강식의 시대였고 약한 나라를 식민지를 삼아 자원을 수탈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였습니다.
그것은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권이 피탈된 이후 일본의 통치는 경제적 수탈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억압하는 무단통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식으로 통치가 지속되면서 일반 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지게 되고 일본에 대한 저항정신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1918년에 독일의 항복으로 끝나면서 세계 질서가 변하게 되었습니다.

승전국이 었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 라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함으로서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도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민족자결주의는 모든 민족의 독립이 아닌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독립시켜 패전국들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었기에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한제국은 애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런식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와중에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붕어하면서 고종황제의 죽음이 일제에 의한 독살이라는 소문에 민심은 격앙되었고 2월 8일에는 일본 도쿄 YMCA 강당에서 2.8 독립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에 국내 독립운동가들은 "저 어린 학생들도 적진 한가운데서 독립을 외치는데 우리는 고향땅에서 뭐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는 심정으로 3.1운동을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3월 1일에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만세 시위 운동을 하는거로 결정됩니다.

독립선언서 만들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대량으로 인쇄소에서 인쇄를 할때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에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인쇄소가 발각된 것 입니다. 이에 민족대표 33인중 하나인 최린이 "너는 조선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 하고 묻고 당시로서는 꽤 거금을 건냈다고 합니다. 돈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어쨌든 신철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다행히 3.1운동은 진행이 되었지요.
여기서 웃긴건 신철에게 "너는 조선 사람이냐"고 한 최린은 나중에 변절하게됩니다.

드디어 때가 밝았습니다.


3월 1일 2시

3.1운동을 하려 여기저기서 모여든 인파로 탑골공원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민족대표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시간 민족대표33인 중 29명은 기생 요릿집인 태화관에서 자기들끼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술을 마시고 일본경찰에 자수하여 체포되는 어리둥절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에 탑골공원에 모인 인파들중 한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3.1만세운동을 시작합니다.

왜 그랬을까?
민족대표 33인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서 차칫 폭력사태로 번질 수가 있기에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독립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민족대표라는 사람들이 33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 한명도 탑골공원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참 많은 생각이 들게합니다.

결국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었을때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대표는 감옥에서 수감중이었으며 지도부가 따로 없던 만세운동은 일본의 폭력적인 진압에 희생이 되었습니다.

결국 3.1운동이후 일본의 통치 전략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1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알려지게 되어 아직 식민지국가인 나라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ex)중국 5.4운동

3.1운동 이후 비폭력투쟁에 한계를 느낀 독립운동가들은 무장투쟁으로 저항노선을 바꿨으며 이는 임시정부 수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은 3.1운동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민족대표들은 운동을 이끌지 못하고 체포당해주었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는 그들이 있었을지언정 정작 3.1운동에 그들은 없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3.1운동의 전개 과정을 볼때 이는 곧 국민들이 스스로 주도한 운동이라고 할만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민주주의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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