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뉴스에도 나오며 많은 논란이 있었던 북침과 남침.

청소년들이 6.25가 북침인지 남침인지도 모른다고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었다던 뉴스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때도 정말 몰랐던 청소년은 없었을 거에요.

북쪽에서 침략했다.
북쪽으로 침략했다.
남쪽에서 침략했다.
남쪽으로 침략했다.

이렇게 한글로 써놓으면 알기 쉬운데 한자로 북침, 남침 이러니까 헷갈렸을 가능성이 높지요.

여러 논란이있지만 ~으로 로 해석하는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북벌, 북상 등등이 참고할만합니다.
근데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북풍이라고 하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가 맞는 말 같은데..
북한이 침략했으니까 북침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하니.. 꼭 주어를 써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문법적 논란과는 무관하게 북한이 남한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을 넘어오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러시아나 중국도 인정하는 부분인데 아직도 북한은 남한이 미국의 조종을 받아 북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의 진행은.. 아시다시피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그 3일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국회에서 서울을 사수 하자라고 결정하고 27일 대통령 보고을 위해 경무대를 방문했는데.. 없었다고합니다.

이승만은 그때 이미 대전으로 도망가서 방송준비 중이었다고합니다.
이승만의 도망에 관하여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방송으로

-국군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계속 진격하고 있습니다.

라고 안심 시키고 뒤늦게 피난가는 국민들이 있는 한강철교를 폭파한 행동들과 전쟁중에 보여준 모습들은..

이 부분은 아직도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한 내용이긴 합니다.



그뒤로는 낙동강까지 밀렸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의주까지 탈환하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현재 휴전선까지 밀렸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지만 UN에서 남한을 지원한 나라는 의료 물자 등을 지원한 국가 포함 67개국 이고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한 나라를 도와준 전쟁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어요.

물론 북한도 러시아나 중국 그 외 공산주의 나라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근 이슈가 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도 6.25 참전국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가

"부당하게 침략당한 나라가 있다면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

라고 하며 황실 정예군을 보내서 도와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후 쿠테타로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서먹해졌다가 또다시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대한민국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나라가 참전 했음에도 미국과 소련은 조심스러웠다고 합니다.
3차대전으로 확산될까봐..

2차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되서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들이 전쟁이라면 치를 떨고 있었고 2차대전을 수습하기에도 힘든 상황이라 필사적으로 확전을 막았다고 합니다.

중공군이 참전한다는 정보를 받은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이 한반도에 들어 오기전에 핵을 날려서 막아야 한다고 했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승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핵을썼으면 한반도는 통일했을 수도 있겠지만 3차대전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중공군이 내려올때 소련군도 몰래 투입되었지만 미국은 그냥 못본척 했다고 합니다. 소련군이 투입되었다고 인정해버리면 전쟁은 확산되니까 서로 조심스러웠던 것이죠.
소련으로서도 이왕 벌어진 전쟁 이기기는 해야겠는데 괜히 미국과 전면으로 이어지면 2차대전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소련인지라 미국과의 전면전은 부담스러운 상황이고 하니 몰래몰래 지원을 했다고합니다.



3년여에 걸친 전쟁으로 한반도는 초토화 되었지요.
일단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면서 쓸어버렸고 다시 북진하면서 또다시 초토화 북한으로 치고가면서 북한도 초토화 다시 중공군이 내려오면서 또 초토화..

북한이 점령할때는 인민재판으로 학살,
한국이 점령했을때는 빨갱이라고 학살..

참으로 끔찍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되었는데..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반대하여 휴전협정서에 남일이랑 김일성의 북한 대표 서명은 있는데 한국대표 서명은 없습니다.

전쟁중에 전시작권권이 미군에게 넘어간 것도 있고 유엔군의 지휘를 받아서 전쟁을 했음으로 이승만 서명이 없다고 휴전협정이 아닌건 아니지요.

휴전국이라서 현재 전쟁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협정으로 전쟁이 종결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전쟁의 영향으로 국토의 황폐화와 사람들도 많이 죽거나 다치고 살아남은 사람도 이산가족으로 헤어지고 수많은 문화재의 손실과 남북한의 적대감 강화등 여러가지로 국가적 재앙이었습니다.
그래도 전쟁전에는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후에 서로 격해진 감정은 지금까지도 서로간에 남아있어서 평화통일의 길은 더욱 멀고도 험해졌지요.



또한 전쟁전에도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않았지만.. 반민특위나 국민정서상 친일파들이 대놓고 활개치지는 못햇는데..
물론 그 이승만은 그 반민특위를 해산시켰으니 점점 매국노들이 득세했을것 같긴하지만요.

전쟁 중에 필요한 장교들을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찾다보니 식민지 시절 일본육군사관학교 나오고 간도특설대로 활동한 매국노들이 한국군 장교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고 전쟁 후에는 그 매국노들이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 등 점점 미쳐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전쟁전에도 국군의 장교들은 일본 육사출신들이 많았습니다만..

특히나 전쟁 후에는 빨갱이 색출로 반공의 깃발을 휘날리며 식민지 시절 일본정부 밑에서 독립군을 핍박하던 경찰이나 관료들이 경력을 인정받아 경력직으로 전후 복구에 참여하는등 막장의 징조가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친일파 청산을 못한 이상 점차적으로 진행은 되었겠지만 전쟁으로 급물살을 타게된거지요.

경력많은 신입을 원하는 풍조가 그때 부터였는지도 모르겠네요.

독립군들은 체계적인 교육보다는 경험에 의한 부분이 많고 사상적으로 이승만과 걸리는게 많아서 전쟁 후에 많은 부분에서 등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쟁은 많은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들도 바꿔놓았지요.

그 끔찍한 전장 속에서 우리는 눈부신 경제 발전이라는 꽃을 피워냈습니다. 하지만 그때 청산하지 못했던 과거는 이제 뽑아낼수없는 거대한 잡초처럼 사회 전반에 뿌려져있습니다. 언제쯤 그 과거를 돌아보고 제대로 바른 토양을 만들어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게 될까요?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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